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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의 성모님
  박현정 마리아2019년 07월 24일  


임마꼴라타 성모님 (성모동산)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마리아 임마꼴라타 대축일 12월 8일

(Mary’s Immaculate Conception, Immacolata Concezione della Beata Vergine Maria)


임마꼴라타는 "나는 원죄없이 잉태되었다."는 뜻을 가진 성모님의 다른 이름으로, "원죄없으신 잉태"는 하느님의 어머님 마리아께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다.

마리아 임마꼴라타 대축일은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공로를 미리 입게 하시어, 성모 마리아를 원죄에서 보호하셨음을 기리고 찬미하는 날이며,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구원의 신비를 다시 한번 잘 살도록 준비시키는 대림절의 핵심적인 신심입니다.

교회는 5세기 말부터 예루살렘의 마리아 성당 봉헌일인 9월 8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을 지냈다.
8세기경부터는 이날에서 거슬러 계산하여 9개월 전인 12월 8일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 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로 지냈으며, 이것이 9세기경 서방 교회에 전파되었다.

1476년 교황 식스토 4세는 이를 로마 전례력에 도입하였고, 마리아 임마꼴라타 축일(12월 8일)은 1708년 교황 클레멘스 11세가 정하였으며,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 되심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성모님은 1858년 3월 25일 루르드에서 베르나뎃다(성녀 축일 4월 16일)에게 발현하시어 "나는 원죄없이 잉태되었다."라고 말씀하심으로서 교황선포가 재확인되었다.


루르드 성모님 (대성전)

루르드의 성모(프랑스어: Notre Dame de Lourdes)는 18회에 걸쳐 나타났다고 보고된 성모 마리아를 가리키는 말이다. 루르드의 성모 발현은 1858년 2월 11일 목요일에 시작되었다. 당시 14살의 가난한 소작농 소녀였던 베르나데트 수비루의 보고에 따르면, 여동생과 친구와 같이 땔나무를 모으던 중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마사비엘 동굴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부인’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사후 성녀로 시성되었으며,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당시 그녀가 성모 마리아를 본 것이라고 믿고 있다. 1862년 교황 비오 9세는 그 지역 주교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루르드의 성모를 공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1858년 2월 11일,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빵과 물물교환을 하려고 투아네트, 잔 아바디 등 또래의 다른 두 소녀와 함께 약간의 땔나무와 수프 재료로 쓰일 살이 조금 붙은 뼈 등을 채집하러 돌아다녔다. 마사비엘 동굴 근처에 있는 가브 강을 건넌 두 소녀를 따라 베르나데트도 강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었을 때, 폭풍우 같은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강변의 나무와 수풀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동굴에서 갑자기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발끝까지 내려온 하얀 드레스에 하늘색 허리띠를 두르고, 하얀 베일로 머리와 어깨를 덮었으며 팔에는 묵주를 두르고 있고 발아래에는 노란 장미가 있는 모습을 한 여인이 나타났다. 베르나데트는 그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도취하여 자기도 모르게 묵주를 꺼내 기도를 바쳤다. 베르나데트가 묵주 기도를 끝마치자, 여인은 베르나데트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한 다음 순식간에 사라졌다.
베르나데트는 이 일을 자기만이 아는 비밀로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귀가하던 도중에 비밀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여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으나 그 비밀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그녀의 부모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부모의 힐문을 받고서 그녀와 그녀의 누이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체벌을 받았다.
3일 후, 베르나데트는 다른 두 명의 소녀와 같이 동굴을 다시 찾았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베르나데트가 탈혼 상태에 빠진 것에 놀라 두 소녀가 몹시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녀들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 베르나데트는 아직도 황홀경이 없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2월 18일, 그녀는 부인에게서 “너는 앞으로 2주 동안 매일 이 동굴에 오너라.”라는 말을 들었다. 부인은 이어서 “나는 너에게 이 세상의 행복은 약속하지 못하지만 다음 세상의 행복은 약속 하마.”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경찰과 시 당국까지 포함한 지역 전체의 관심이 이곳에 집중되었다. 부모와 경찰은 베르나데트가 더는 마사비엘레 동굴로 가지 못하도록 조치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계속 동굴을 찾았다.
2월 25일, 부인은 작은 흙탕물을 가리키며 베르나데트에게 가서 마신 다음에 씻으라고 지시했다. 베르나데트는 부인이 지시한 대로 손으로 땅을 깊이 파헤친 후 그 물을 마시고 목욕하였다. 그러자 깨끗한 샘물이 갑자기 엄청난 양으로 나왔다. 이 소식이 방방곡곡에 알려지면서, 온갖 종류의 병을 앓는 환자들이 대거 몰려와 이 샘물을 마시거나 몸에 뿌렸다. 그 후, 많은 기적 치료가 보고되었다. 그들 가운데 7명은 1860년 베르게 교수에 의해 어떠한 의학적 설명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샘물을 통해 기적적으로 치유된 것으로 인정받은 첫 번째 환자는 사고 후 오른손이 기형으로 변한 여성이었다.
군중의 수가 점점 많아지자 프랑스 정부는 루르드를 점차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보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는 동굴을 울타리로 막고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한 다음 누구라도 이곳에 접근하는 자는 엄중하게 처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루르드는 어느새 프랑스의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동굴은 나폴레옹 3세 황제의 개입으로 1858년 10월 4일에 다시 일반에 개장되었다. 이와 같은 논쟁에서 교회는 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로 하였다.
3월 25일, 밤중에 베르나데트는 어둠을 틈타 동굴에 겨우 도착하였다. 동굴 주위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가브 강가에 무릎을 꿇고 동굴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베르나데트는 부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부인에게 이름을 물었으나 부인은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이 없었다. 마침내 네 번째 물음에 그녀는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라는 부인의 대답을 들었다.
4월 7일 일요일 부활절 날, 베르나데트를 관찰한 의사는 그녀가 탈혼 상태에 빠졌을 때, 촛불에 손을 뻗었는데도 화상을 전혀 입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 7월 16일, 베르나데트는 동굴에 마지막으로 찾아갔다. 부인의 미소를 보고 감탄한 그녀는 나중에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라고 회고했다.
지금까지 모든 과정 동안,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교회는 전국적인 질문들에 직면하자, 1858년 11월 17일에 루르드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하였다. 1860년 1월 18일, 지역 교구장은 “동정 마리아께서는 참으로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나타나셨다.”라고 발표하였다.
오늘날 루르드는 파티마와 더불어 성모 공경의 근거지로서, 매년 세계 각국에서 4-600만 명의 순례자가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순례지 가운데 한 곳으로 자주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 근래의 교황들 역시 루르드를 자주 방문하였다. 베네딕토 15세, 비오 11세, 요한 23세는 주교 시절에 루르드를 찾아왔으며, 비오 12세는 교황 사절 때 루르드를 찾았다. 비오 12세는 또한 루르드의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해 회칙 《루르드의 성지 순례》(Le Pelerinage de Lourdes)를 발표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루르드를 총 세 번 방문하였다. 베네딕토 16세는 2008년 9월 15일 루르드의 성모 발현 150주년을 맞아 루르드를 찾아 미사를 거행하였다.


갈멜산의 동정 성모님 (2층강당)

갈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 7월 16일

(본당의 주보성인)

갈멜 수도회에서는 그 시초부터 성모 마리아 공경이 매우 중요시되었다. 하이퍼 근처에 있는 갈멜산(해발 546m)에는 이미 초대 그리스도교 시기부터 엘리야 예언자와 같이 극기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엘리야 시대에 오랜 가뭄 뒤 바다에 나타나, 해갈을 예고했던 작은 구름을 주님의 어머니에 비유하여 해석하였다.

이 사람들은 동정 마리아를 “갈멜산의 사랑스런 우리 여인”이라는 호칭으로 공경하였으며, 그들이 사라센의 공격을 피해 13세기에 유럽으로 옮겨왔을 때에도 이 공경은 계속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동정 마리아께서는 영국 갈멜회의 사이몬 스톡(Simom Stock)에게 발현하여, 살아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을 축복하실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스카풀라(Scapulare)를 주셨다고 하며, 이 전통은 1726년 가톨릭교회에서“스카풀라 축제”를 정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바뇌의 성모님 (만남의 방)

(Our Lady of Banneux)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가난한 자들의 동정녀’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신 것처럼 병든자와 가난한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러 오신 어머니 다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바뇌의 성모님은 발현하신 모습부터 매우 소박하고 겸손한 많은 자녀를 둔 어머니의 모습이다. 성모마리아는 대단히 젊고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미소를 띄며 친절하게 베코에게 나타나셨다. 그리스도의 사랑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친절도 있다.베코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은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바라보며 돌보듯 양손을 벌려 베코를 바라보고 뒷걸음 질 쳐가며 어머니답게 인격존중하며 샘물로 인도하셨다. 부랑아와 같은 매우 보잘 것 없는 아이를 존중하고 그에게 존경심을 드러내는 사랑많으신 어머니, 가난한 자의 동정녀이며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러 오신 바뇌의 성모님께 고통받는 많은 이들은 영원히 위안을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은 뜻으로 그리스도수도회 사도직의 목적은 가난한 이들의 현실적인 의식주 뿐 아니라 그들의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뇌에 발현하신 마리아는 늘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현하시고 베코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이로써 냉담중이던 마리에트 베코는 묵주를 찾아 기도를 드리고 성담에서도 다시 나가 교리를 배우고 첫 영성체를 받았다. 마리아는 하느님과 멀어진 아이를 예수님께 인도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수도회 사도직 또한 하느님을 모르고 떠돌며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알게하고 성모님과 그리스도께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무료로 입원, 치료하게 함으로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왔다” 고하신  성모님의 표양을 본받아 온 세상에 어머니의 사랑을 전하고자 한다.

1933년 이래 오늘에 이르기 까지 벨기에 바뇌의 소성당에는 성모님께서 마리에트 베코에게 말씀하신 ‘병든 이들을 위하여 보존되어 온 샘물’ 이 마르지 않고 솟아난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완케되는 기적이 매일매일 기적처럼 일어나고 있다. 

유럽의 작은나라 벨기에의 1월은 대단히 추운 계절이다. 천주교회가 정식 인정한 성모님의 발현지인 ‘바뇌’ 또한 나자렛과 같은 매우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조그만 마을 일 뿐이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는가” 라고 한 것처럼 이렇듯 작고 천한 마을 바뇌에서 성모님은 1933년 1월 15일 가난하고 천한 마리에트 베코에게 발현 하신 것이다. 보랭에서 성모님의 발현이 끝난지 12일 만이었다. 또한 1월 12일은 루르드 성모 발현 75주년 기념일로 많은 순례단이 루르드를 향하여 설레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거룩한 시기에 발현 하신 것이다.

성모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마다 당신을 가장 많이 닮은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중 대한 임무를 맡기신다. 마리에트 베코는 매우 가난한 집의 11남매 중 맏이로써 저녁 7시 어 두운 밤에 남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벨기에는 4시에 어두워 지기 시작함) 또한 그는 거짓 말을 할 줄 모르는 매우 솔직하고 단순한 성격으로 정결한 마음의 소유자 였다.
겸손하고 용기 또한 나자렛 마리아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성모님은 매우 솔직하고 정결한 마음을 지닌 마리에트 베코에게 발현 하신 것이다.

바뇌에 발현하신 성모님은 무엇을 가르치시는가? 마리아는 늘 기도하는 사람으로 발현하셨다. 여덟번 발현하신 중에 다섯번을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므로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다. 또한 작은 성당을 원한다고 하심으로 성모님은 예수님을 중심해서 말씀하심을 알 수 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아이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가르치고 그의 인격을 존중함으로 누구든지 하느님 앞에 가난한 이들을 업신 여기지 않도록 하셨다. 마리에트베코는 가난한 집의 11남매 중 맏이로 수도자나 동정녀가 아닌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으며 많은 자녀를 둔 어머니이다. 그는 여러가지 고통 중에도 순례객들을 위하여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바뇌의 성모님은 마리에트 베코를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어머니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려주시는 듯 하다.


성모자상 (뒷마당)

 

+ 성모님의 애칭에 대해서...
1. 마리아 (Maria, 영어시 표현은 Mary) - 성모님의 본래 이름 (1/1)
2. 로즈마리 (Rosemary = Rose + Mary) - 아름다운 장미에 비유되는 성모님의 애칭 (5/31)
3. 릴리안 (Lilian) - 순결하고 고귀한 의미의 백합(Lily)에 비유되는 성모님의 애칭 (12/8)
4. 스텔라 (Stella) - '별'이라는 뜻.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을 지칭함 (8/15)
5. 로사리아 (Rosaria) - 묵주는 영어로 Rosary, 로사리아는 묵주의 성모 마리아의 애칭 (10/7)
6. 첼리나(Celina) - 라틴어 Caelus(하늘 승천)에서 유래, 첼리나는 하늘의 여왕인 성모님(8/22)
7. 나탈리아 (Natalia) - 성모 탄신일을 기념한 세례명 (9/8)
8. '성모승천'의 의미를 가지는 성모님 세례명 - 아순타(Assunta) (8/15)
9. '성모영보'의 의미를 가지는 성모님 세례명 - 안눈치아따(Annunciata) (3/25)
10. '원죄없이 잉태된'의 의미를 가지는 성모님 세례명 - 임마꼴라타(Immacolata) (12/8)
11. '성모님의 통고'의 의미를 가지는 세례명 - 돌로로사(Dolorosa) (9/15)